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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전혜린을 읽다 Hug The Books


시대착오적이고 사춘기스럽고 무의미한 일일지 몰라도
오늘 전혜린의 책을 꽤 오랜 시간 들여다봤다.
고등학교 때 이후로 거의 20년 만이다..
온 마음과 정신을 홀딱 빼앗겼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읽은 적도 없고 평생 가야 읽을 일도 없을 책들을 처분하려고 골라내는 와중에도
낡고 헌 이 책은 차마 책장에서 방출하지 못했다.

전혜린은 일찍 결혼했지만 온 영혼을 다해 결혼을 혐오했다.

"(루이제) 린저는 결혼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이다. 온갖 결혼 생활의 뒤에
허위와 굴욕과 비굴한 습관과, 체면과 필연과 정신의 고갈 상태를 찾아낸다."

"결국 린저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결혼은
똑같은 영혼의 높이에 서 있는 사람들의 결혼(실현성이 희박한 예)
관념적인 여자와 관능적인 남자의 결혼(파괴적인 예)
마이트, 마르그레트 등과 같은 일방이나 쌍방의 부정과 동시에
관용으로 이어져 나가고 있는 결혼(가장 흔한 예)이다."

1950년대에 독일로 유학을 갈 만큼 지적이고 용감했던 전혜린 자신도
결혼 생활 속에서 일쑤로 어리둥절해하고 괴로워했다.
삶 속에 으레 포복하고 있기 마련인 권태를 절대 용납할 수 없어
광기로 그 권태를 이겨보려는 사람의 분위기를 풍겼던 전혜린이니,
아무렴, 결혼을 어떻게 쉽게 견뎌내며 살았겠나.
나에게 결혼이란, 대체로 말 잘 듣는 착한 여자임을 애써 자처하다가
내 안의 목소리와 본성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착한 여자 놀이를
지나칠 만큰 단호하게 그만두는 일 또는 그렇게 될까 봐 항상 조심하는 일이다.
전혜린은 32살에 자살로 뜨겁던 생을 마감했다. (아직은 자살이 정설인 것 같다.)
어느 날 밤 전혜린에게, 광기로도 갈음할 수 없이 권태가 너무 컸나 보다.
서울대 법대생, 독일어 번역가, 뮌헨 유학, 자살, 이 어마어마한 코드를 전부 갖고 있는
전혜린의 존재는 18살짜리 소녀였던 내게 코페르니쿠스적이었다.
말이 안 되게 나는 전혜린 때문에 독문과게 가겠다고 우기기도 했다.
전혜린 때문에 자살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만큼 
그녀의 정신, 현학적인 어휘, 신경증적인 예민함이 모두 좋아 따라가고만 싶었다.
실제로 1960년대 당시 전혜린의 죽음을 흉내 낸 자살이 많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딸에게만큼은 절대 전혜린을 권하지 않을 것을 안다.
적어도 삼십대가 되기 전의 무른 마음에는 치명적일 수 있는
열정적인데도 병약하고,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의심하고, 끊임없이 제 모성을 놓고 자학하는
'못된' 여성성이 바로 전혜린 그 자체임을 이제 깨닫는 거다.
그 무정형의 mode가 무르고 해맑은 마음에 침범하기라도 하면
그 아이는 다른 누구가 아닌 자신 때문에 순탄치 않은 삶의 길로만 디뎌 나갈 것임을 말이다.

오늘 밤에 내가 전혜린을 읽는 것은 그러므로
내 마음이 딱딱해지고 되바라져서 이제는 안전함을 확인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Hug The Books


요네하라 마리의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를 한참 읽다가
문득 티티를 바라봤다.
티티는 나와 4년을 함께한 터키쉬 앙고라 암컷 고양이다.
고양이치고는 너무나 고분고분하고 착해빠진 티티가
갑자기 너무나 안쓰럽다고 느껴진 건
순전히 요네하라 마리 때문이다.
요네하라가 함께 지내는 고양이와 개들에게 쏟는 애정이
'동물에 대한 무한사랑'이라서기보다는
반려동물에 대한 그녀의 '진심' 때문이다.


요네하라는 그저 고양이와 개들을 정성을 다해 돌보는 것이 아니라 저 애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를 놓고 열심히 고심한다. 그 점이 내 뒤통수를 쳤다.
나는 티티와 함께 지내면서 진지하게 티티의 생각과 감정을 읽어내려고 노력한 적이 단언코 없다.
그런 건 어차피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불가능한 일에 마음을 쏟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에 마음을 쏟기에는 이미 나는 충분히 마음이 어지럽고 분주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보다는 티티를 호되게 훈련시키는 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
침대에 올라오지 말 것, 식탁에 올라가지 말 것, 식물에 손대지 말 것, 등등... 심지어는, 지금은 스크래처를 마련해 주었지만, 고양이 생리상 손톱을 긁어야 하는데도 스크래처 하나 준비해 주지 않고 소파 천에 대고 손톱을 다듬는 티티를 호되게 응징하기도 했다.
남편이 그런 내게 티티는 고양이인데 가끔 내가 고양이의 생태를 무시하고 티티를 길들이려고만 한다는 얘기를 하면, 동물과 인간이 함께 지내려면 서로 감수해야 하는 일이 있고 티티도 그래서 저 정도는 감수해야지, 라고 응수했다.
그 생각은 남편과 내가 다르지 않은데, 그 접점의 위치에 대해서는 아주 다른 기준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멋대로 고양이'라는 말이 있건만, 나 때문인지 티티의 천성 때문인지 티티는 고양이인데도 '잘 훈련된 개' 같다. ㅜㅜ
아, 정말 요네라하 마리는 티티를 대하는 내 태도를 총체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요네하라 마리는 러시아어 통역사로, 작가로, 번역가로 이름이 높다.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는 요네하라가 고양이들과 개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들이
유머스럽고도 찡하게 그려져 있는데, 급기야는 티티에 대해 일관되게 엄한 내가
갑자기 책을 내려놓고 티티에게 다가가 덥썩 끌어안고 티티야, 사랑해, 알지? 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티티는 날 왜? 뭘 그러기까지...하는 표정 ㅜㅜ)

요네하라는 함께 십여 년을 살았던 고양이가 바로 자기 침대에서 병으로 죽는 것을 본 뒤로는
크게 상심해서 다시는 동물 같은 건 들여놓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한다.
하지만 러시아어 통역장에서 버려진 새끼 고양이 둘을 집에 데려오게 되면서
그때부터 요네하라의 집은 개판과 고양이판이 된다.
고양이 무리와 도리, 유기견 겐, 러시아에서 일하다가 비행기로 공수해 온 소냐와 타냐,
천둥 치는 날 겁에 질려 집을 나간 겐을 찾다가 끝내 겐은 찾지 못하고 데려온 노라까지...
요네하라는 이 식구들의 변화를 수식으로 나타내는 걸 즐긴다.
2+1+2+4-4-1+1=5
이런 식이다.
저 +와 -에 무수하고 긴 사연이 담긴 것은 말할 것이 없다.
죽음, 입양과 파양, 눈물겨운 재회, 사랑과 섹스까지.
황인숙 시인이 표현한 것처럼 "의롭고 명민하고 온화하고 무엇보다도 싱싱한 유머 감각"을 갖춘
요네하라가 고양이, 개 친구들과 벌이는 사건 속에는
왜 요네하라가 충분히 능력있고 매력적인 여성임에도 인간 수컷과 얽힌 뚜렷한 사연이 없는지
그리고 인간 수컷 없이도 풍요롭게 인생을 살 수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단서들이 매복해 있다.
언젠가 내가 정말 슬프고 힘들어 이불 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없는 러시안 블루 레이니가
내 얼굴로 다가와 그 까끌까끌한 혀로 눈물을 핥아 준 기억이 있다.
그래서 때론 동물이 사람보다 더 위안이 된다고 하는 것을 조금은 안다.
요네하라는 때로 그런 것이 아니라 온 삶을 동물 친구들의 위안과 사랑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았다.

요네하라에 빠진 사람들이 많은 것을 익히 알고 있었는데,
어쩐지 손에 안 잡히던 이 책을 이제야 공감하며 읽었다.
그녀의 에세이들을 차곡차곡 읽어 나가야겠다.







Leica DELUX-4 2 Lie my Truth


Leica DELUX-4 1 Lie my Truth


8월의 책 Hug The Books



디케의 눈
_금태섭, 궁리


그건 사랑이었네
_한비야, 푸른숲


총, 균, 쇠
_재레드 다이아몬드, 문학사상사



나의 첫 상사이자 스승이자 언니인 그녀가 불쑥 회사에 와서
사생활의 역사 5권을 전부 읽어 냈다고 자랑했다.
20년 가까이 한 편집자 생활을 접고
지금은 다른 길을 도모하는 그녀에게 모처럼 주어진 긴 휴식이었을 거다.
그 시간에 그녀는 이런저런 일들에 떠밀려 늘 노려보기만 했던 책들을 독파했다.
부럽다...
그러나 나는 8월에도 책을 많이 읽을 수 없을 것이다.
많은 것이 정리되고 분명해져 가는 시기인 만큼 너무나 분주하다.
몸이 피곤하고 늘 약간 흥분 상태다.
그렇다 해도 지금 내가 한달 동안 어디 틀어박힐 수 있다면
책을 읽을까?
그보다 중한 일이 아주 많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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